국제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찍은 지 불과 사흘 만에 곤두박질쳤습니다. 2026년 9월 7일 톤당 1만4533달러까지 치솟으며 종전 최고가를 갈아치웠던 구리는 9월 10일 하루 만에 5%대로 급락했습니다. 같은 날 국제유가는 배럴당 105달러를 넘어서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던 것과는 정반대의 흐름입니다.
더 헷갈리는 건 금과 은입니다. 최근 몇 달간 금값은 오히려 고점 대비 조정을 겪어왔는데, 정작 구리는 같은 기간 나 홀로 사상 최고치를 향해 달려왔습니다. 대체 구리 시장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관련주 반응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구리 가격 어쩌다 사상 최고치?
런던금속거래소(LME) 3개월물 구리는 9월 7일 톤당 1만4533달러를 기록하며 지난 1월 세운 종전 최고가(1만4527.5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올해 들어 16~17%, 최근 12개월로는 47% 급등한 수치로, 같은 기간 20%대 오른 금값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상승 속도입니다.
수요 쪽에서는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현대화, 전기차·재생에너지 설비 확대가 구리 소비를 밀어 올렸습니다. 공급 쪽에서는 세계 최대 생산국인 칠레의 부진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올해 상반기 전 세계 구리 광산 생산량은 전년 대비 1.1% 줄었는데, 특히 칠레의 7월 생산량은 2011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관세가 만든 ‘프리미엄’, 미국으로 쏠린 물량
여기에 결정적인 변수가 더해졌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정련구리에 대한 관세 부과를 공식 제안한 뒤, 관세가 시행되기 전에 미국으로 구리를 옮겨두려는 트레이더와 수입업체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됐습니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와 LME 간 가격 차이를 노린 차익거래가 이어지면서 수십만 톤의 구리가 미국으로 이동했고, COMEX 재고는 8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반면 LME 창고 재고는 빠르게 줄어들면서 미국 외 지역에서는 단기 공급 부족이 나타났고, 현물 가격이 선물 가격보다 높아지는 백워데이션 현상까지 벌어졌습니다. 관세 우려가 실제 물리적 품귀로 이어지며 가격에 ‘관세 프리미엄’이 얹힌 셈입니다. 미국 관세 정책이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장은 관세는 왜 계속 돌아오는가에서 다룬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사흘 만에 무너진 이유
그런데 9월 10일, 상황이 급반전됐습니다. 백악관이 제조업 원가 상승과 물가 부담을 우려해 정련구리 관세 최종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동안 쌓여온 관세 프리미엄이 하루 만에 증발했습니다. 비철금속 시황 전문지 KIDD에 따르면 LME 구리는 장중 한때 1만4875달러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가를 새로 썼다가 곧바로 1만4207달러까지 밀려, 고점과 저점 사이 낙폭이 668달러에 달했습니다.
현물과 3개월물 간 프리미엄도 톤당 58달러에서 11달러로 순식간에 쪼그라들면서 단기 공급 부족 압박이 크게 완화되는 모습입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소비자와 제조업체의 비용 부담을 의식한 백악관이 결정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미국 내에 쌓인 대규모 재고가 다시 글로벌 시장으로 풀릴 수 있다는 전망까지 겹치며 가격 하락 압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구리 관련주 현황과 반응
미국 구리 광산주들은 이날 일제히 급락했습니다. 24/7 월스트리트 집계에 따르면 프리포트-맥모란(FCX)이 7~8%, 텍 리소스(TECK)와 남부구리(SCCO)가 6~7%씩 떨어졌고, 지난주 17% 급등했던 이반호 광산(Ivanhoe Mines)도 5% 반락했습니다. 반면 같은 비철금속이라도 금광주인 뉴몬트는 2% 미만 하락에 그치며 상대적으로 선방했습니다.
국내 구리 관련주들도 올 한 해 이 랠리를 그대로 따라 움직여왔습니다. 신동(가공동) 사업을 하는 풍산은 전기동 가격과 실적 방향성이 대체로 동행해온 대표 종목으로 꼽힙니다. NH투자증권은 지난 8일 풍산에 대해 매수 의견과 목표주가 10만3000원을 제시하며, 구리 가격 강세와 방산 부문 성장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이구산업, 서원, 대창 등 비철금속 가공주들의 움직임은 훨씬 격렬했습니다. 앞서 관세 이슈가 처음 불거졌던 지난 3월에는 구리 가격이 급등하자 이구산업이 하루 만에 25.89%, 대창이 14.80%, 서원이 9.28% 뛴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구리 가격 뉴스 하나에도 두 자릿수로 출렁여온 종목들인 만큼, 이번처럼 관세 프리미엄 자체가 꺼지는 국면에서는 반대 방향으로도 변동성이 커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금은 가격은 떨어졌는데, 구리값은 왜 올랐을까
같은 원자재인데 왜 금·은과 구리는 반대로 움직였을까요. 답은 두 자산이 가격을 결정하는 메커니즘 자체가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금과 은은 이자를 낳지 않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금리와 달러 흐름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실제로 TNI가 고점 대비 30% 하락한 금값을 짚었던 지난 7월 이후, 금값은 연준의 매파적 신호와 미 국채 금리 상승 속에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반면 구리는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소비되는 ‘실물 경기 지표’에 가깝습니다. AI 데이터센터, 전력망, 전기차라는 구조적 수요와 칠레발 공급 차질이라는 실질적 공급 충격이 겹친 데다, 관세 회피를 위한 물량 이동이라는 정책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금·은과는 다른 논리로 홀로 사상 최고치를 향해 달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9월 10일 하루만큼은 셋 다 동시에 하락했습니다. 다만 이유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마이닝닷컴(Mining.com) 집계에 따르면 이날 구리는 5.3%, 은은 5.9%, 금은 1.6% 각각 하락했는데, 구리 하락은 앞서 설명한 관세 결정 유예가, 금·은 하락은 9월 미국 금리인상 확률이 60%에서 70%로 치솟은 여파가 각각의 진짜 원인이었습니다. 10년물 미 국채 금리가 4.77%까지 오르고 국제유가마저 105달러를 넘어서며 물가 부담을 키운 것도 금·은에는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앞으로 관전 포인트
구리 시장의 다음 분수령은 백악관의 관세 최종 결정입니다. 결정이 계속 미뤄지거나 관세 수위가 예상보다 낮아질 경우 미국에 쌓인 재고가 풀리며 추가 조정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칠레 등 주요 광산의 생산 차질이 길어지면 구조적 수요 우위가 다시 부각되며 반등할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오는 9월 15~16일로 예정된 연준 회의 결과도 변수입니다. 미국 국채 금리 급등이 국내외 증시에 미치는 영향에서 살펴봤듯, 금리 결정 하나로 금·은은 물론 구리 관련주의 단기 변동성도 함께 커질 수 있는 만큼 당분간 원자재 시장 전반을 주시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정리하면 이번 급락은 구리의 장기 수요 우위 자체가 꺾였다기보다는, 관세라는 정책 변수가 만들어낸 ‘단기 프리미엄’이 빠진 결과에 가깝습니다. AI·전력망발 수요와 칠레발 공급 차질이라는 큰 그림이 유효한 이상, 관세 결정이 어떤 식으로든 매듭지어지는 시점이 다음 방향성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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