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 147억달러, 우리 돈 20조원이 넘던 회사가 5년도 안 돼 2천억원대로 쪼그라들었습니다. 기업가치의 99%가 사라진 겁니다. 전쟁도, 회계부정도, 오너 리스크도 아니었습니다. 원인은 단 하나, 생성형 AI였습니다.
AI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전망은 수년째 나왔습니다. TNI도 2023년에 한국은행이 분석한 미래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직업 순위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2026년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더 이상 ‘될 것’이 아니라 ‘이미 된’ 업종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AI 때문에 이미 무너진 업종 다섯 곳을 실제 기업 사례와 숫자로 짚어보고, 이들 사이에 숨은 공통 패턴을 정리했습니다. 이 패턴을 알면 다음 희생양이 어디인지, 그리고 내 일과 내 포트폴리오가 어느 쪽에 서 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① 숙제 대행 시장: 체그, 시총 99% 증발
미국의 체그(Chegg)는 대학생이 막힌 문제를 올리면 전문가가 풀이를 달아주는 구독형 학습 서비스였습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확산하면서 수요가 폭발했고, 주가는 2021년 2월 113.51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월가가 사랑한 ‘팬데믹 수혜주’였습니다.
문제는 챗GPT였습니다. 학생 입장에서 매달 구독료를 내고 풀이를 기다릴 이유가 사라진 겁니다. 공짜 AI에 물어보면 몇 초 만에, 그것도 풀이 과정까지 설명해주니까요.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체그의 1분기 구독자는 전년 대비 31% 줄어든 320만명에 그쳤습니다. 체그는 구글의 AI 요약(AI Overviews) 때문에 트래픽과 매출이 줄었다며 구글을 상대로 소송까지 냈지만 흐름을 되돌리지 못했습니다. 주가가 30거래일 연속 1달러를 밑돌면서 뉴욕증권거래소로부터 상장폐지 경고도 받았습니다.
결국 체그는 2025년 10월 전체 인력의 약 45%인 388개 직무를 감축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월스트리트CN 보도에 따르면 당시 시가총액은 고점 약 147억달러에서 약 1억5600만달러로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회사가 내건 감원 사유는 ‘AI의 새로운 현실’이었습니다. 핑계가 아니라 사실상의 자백이었던 셈입니다.
② 번역: 일감보다 ‘단가’가 먼저 사라졌다
번역 업계의 균열은 챗GPT보다 훨씬 앞서 시작됐습니다. 알파고 쇼크 이듬해인 2017년, 이화여대·중앙대 등 국내 통번역대학원 지원자는 전년보다 10%가량 줄었습니다. 20년간 국내 1위였던 통번역 입시학원이 학생 감소로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생성형 AI는 결정타였습니다. 영국 작가협회 조사에서 번역가의 36%가 생성형 AI 때문에 일감을 잃었다고 답했고, 43%는 수입이 줄었다고 응답했습니다.
주목할 대목은 ‘남은 일감’입니다. 의뢰인이 AI로 만든 초안을 건네며 약간만 다듬어달라고 요구하고, 기존 단가의 10~20%만 제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겁니다. 일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일의 ‘가격’이 무너진 것입니다.
기업 쪽 움직임도 같은 방향입니다. 언어학습 앱 듀오링고는 ‘AI 퍼스트’를 선언하면서 AI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던 외주 계약자를 단계적으로 줄이겠다고 밝혔습니다. 번역과 콘텐츠 제작이 대표적인 영역입니다.
③ 스톡 이미지: 게티이미지의 소송·합병·백기
세계 최대 사진 판매 회사 게티이미지(Getty Images)의 지난 2년은 AI에 맞선 기존 강자가 어떤 경로를 밟는지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사례입니다. 게티는 사진 라이선스를 팔아 돈을 벌어왔지만, 이제는 프롬프트 한 줄이면 비슷한 이미지가 1분 만에 수십 장 쏟아집니다.
첫 번째 카드는 소송이었습니다. 게티는 이미지 생성 AI 기업 스태빌리티AI가 자사 사진 수백만 장을 무단으로 학습했다며 영국 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하지만 2025년 11월 판결은 사실상 게티의 패배였습니다.
페타픽셀에 따르면 법원은 AI 모델이 원본 저작물을 저장하거나 복제하지 않는다며 2차 저작권 침해 주장을 기각했습니다. 핵심 쟁점이던 학습 자체의 위법성은 모델이 영국 밖에서 학습됐다는 이유로 게티가 재판 도중 주장을 거둬들이면서 판단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게티가 건진 것은 AI 결과물에 자사 워터마크가 찍혀 나온 부분의 상표 침해 일부뿐이었습니다.
두 번째 카드는 덩치 키우기였습니다. 게티는 2025년 1월 라이벌 셔터스톡과 37억달러 규모의 전액 주식 교환 방식 합병을 발표했습니다. 연간 1억5000만~2억달러의 비용 절감을 내세우며 AI 이미지 도구를 만드는 빅테크와 맞서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영국 경쟁시장청(CMA)이 셔터스톡의 보도사진 사업 매각을 승인 조건으로 내걸자 게티는 2026년 7월 합병을 포기했습니다.
인베즈 보도에 따르면 이 소식에 셔터스톡 주가는 장전 거래에서 30% 넘게, 게티 주가는 5% 넘게 빠졌습니다. 셔터스톡의 1분기 매출은 이미 전년 대비 17.9% 줄어든 1억9920만달러였습니다. 한 애널리스트는 덩치를 키워도 경쟁 압력을 잠시 늦출 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세 번째 카드는 사실상의 백기였습니다. 게티는 2026년 6월 오픈AI와 계약을 맺고 자사 콘텐츠를 챗GPT 안에 노출하기로 했습니다. 싸우던 상대의 플랫폼에 납품하는 처지가 된 겁니다.
④ 콜센터 1차 상담: 원가 3분의 1짜리 경쟁자
콜센터는 AI 대체 논의에서 가장 먼저 거론돼온 업종입니다. 이유는 단순한 산수입니다. 2017년 업계 추산으로 사람 상담원은 전화 한 통에 인건비 약 1500원이 드는 반면, AI 상담원은 150~500원이면 충분했습니다. 그 가격은 지금도 계속 내려가고 있습니다.
은행이나 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사람 목소리를 듣기까지 몇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 떠올려보면 변화의 속도가 체감됩니다. 콜센터 산업이 통째로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정형화된 질문에 답하는 ‘1차 응대’ 시장은 빠르게 AI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⑤ 신입 개발자: AI를 만든 사람들의 역설
가장 아이러니한 희생양은 개발자입니다. AI를 만드는 직군이 가장 먼저 AI에 자리를 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AI매터스가 인용한 해고 추적 사이트 스킬싱커 집계에 따르면 2026년 6월 8일까지 발생한 감원 피해자는 약 18만3966명이었고, 이 중 약 55%에 해당하는 감원이 AI·자동화·머신러닝을 직접 사유로 명시했습니다.
특히 22~27세 청년층이 가장 큰 충격에 노출됐습니다. 코드로 옮기기 쉬운 신입 단계 업무가 우선 표적이 된 겁니다.
다만 이 숫자는 걸러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기 둔화나 경영 실패로 인한 감원을 ‘AI 때문’으로 포장하는 이른바 ‘AI 워싱’이 섞여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오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해고 대신 채용을 아예 줄이는 ‘조용한 감축’까지 감안하면 실제 충격은 통계보다 클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다섯 업종의 공통점: ‘초안 시장’의 붕괴
숙제 풀이, 번역 초벌, 스톡 사진, 1차 상담, 신입 코딩. 다섯 업종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공통분모가 보입니다. 필자는 이것을 ‘초안 시장의 붕괴’라고 부릅니다.
이들 시장이 팔던 상품은 대부분 ’80점짜리 결과물’이었습니다. 정답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최종 사용자가 한 번 더 확인하거나 고쳐서 쓰는 중간재였다는 뜻입니다. 학생은 체그의 풀이를 참고해 과제를 냈고, 기업은 번역 초벌을 받아 검수했으며, 디자이너는 스톡 사진을 가공해 썼습니다.
AI는 100점을 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80점짜리 초안을 공짜에 가깝게, 무한히, 즉시 찍어내기만 하면 됐습니다. 그 순간 80점을 돈 받고 팔던 시장은 가격 경쟁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앞서 번역 사례에서 본 것처럼, 일이 사라지기 전에 ‘값’이 먼저 사라지는 이유입니다.
정리하면 AI에 먼저 무너지는 일은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결과물이 정형화돼 있다 — 양식, 정답, 표준이 존재합니다.
누군가 뒤에서 검수한다 — 완벽하지 않아도 최종 사용자가 보정해 씁니다.
결과에 대한 법적·사회적 책임이 약하다 — 틀려도 공급자가 크게 책임지지 않습니다.
반전: 100점이 필요한 자리엔 사람이 돌아온다
그렇다고 AI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은 아닙니다.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는 고객 상담을 AI 챗봇으로 대거 전환했다가, 품질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판단해 다시 사람 상담원 채용에 나섰습니다(더데일리업사이드).
이 사례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고객이 화가 났을 때, 예외 상황이 생겼을 때, 누군가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할 때는 80점짜리 답변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AI가 초안을 공짜로 만들수록 그 초안에 ‘도장’을 찍어줄 사람의 가치는 오히려 올라갑니다.
몰락 기업이 밟는 ‘소송→합병→제휴’ 3단계
투자자 입장에서 더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체그와 게티이미지의 행보를 시간순으로 놓으면, 기술 변화에 밀리는 기존 강자가 반복적으로 밟는 경로가 보입니다.
1단계는 소송입니다. 체그는 구글을, 게티는 스태빌리티AI를 고소했습니다. 경영진이 시장이 아닌 법정에서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은, 제품 경쟁력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2단계는 방어적 합병입니다. 성장이 아니라 비용 절감과 생존을 명분으로 한 합병은 산업의 파이 자체가 줄고 있다는 고백에 가깝습니다. 게티·셔터스톡 합병이 대표적입니다.
3단계는 적과의 제휴입니다. 맞서 싸우던 기술 기업의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순간, 기존 강자는 생태계의 주인에서 납품업체로 지위가 바뀝니다. 매출은 일부 지킬 수 있어도 가격 결정권은 넘어갑니다.
대우그룹·한진해운·동양그룹처럼 재무 위기로 무너진 기업들이 몰락 전에 비슷한 신호를 반복적으로 보냈듯(재계 2위도 한순간에 몰락…대우그룹·한진해운·동양이 보낸 신호), 기술 충격에 밀리는 기업도 공시와 뉴스에 흔적을 남깁니다. 보유 종목에서 이 세 단계 중 하나라도 보인다면 사업 모델을 다시 점검해볼 때입니다.
투자자를 위한 ‘초안 비중’ 체크리스트
앞의 분석을 종목 점검에 바로 쓸 수 있도록 표로 정리했습니다. 해당 항목이 많을수록 AI 충격에 취약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점검 항목 | 위험 신호 | 상대적 안전 신호 |
|---|---|---|
| 매출의 원천 | 정형화된 콘텐츠·정보·응대를 판매 | 검증·인증·책임을 판매 |
| 고객의 사용 방식 | 받은 결과물을 고객이 다시 고쳐 씀 | 결과물을 그대로 믿고 의사결정에 씀 |
| 가격 추이 | 건당 단가가 하락 중 | 단가 유지 또는 상승 |
| 무료 대체재 | 챗봇으로 80% 수준 재현 가능 | 현장·물리적 실행이 필요 |
| 경영진 대응 | 소송·방어적 합병·빅테크 납품 계약 | AI를 활용해 원가 절감과 신사업 확대 |
| 트래픽·구독자 | 검색·신규 유입이 지속 감소 | 충성 고객 기반 유지 |
반대로 AI가 만든 초안을 검증하고 책임지는 쪽, 다시 말해 ‘마지막 20점’을 쥔 기업은 수혜를 볼 가능성이 큽니다. 데이터의 정확성을 보증하는 사업자, 규제 산업에서 최종 책임을 지는 사업자, 물리적 현장을 가진 사업자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음 후보는 어디일까?
앞의 세 가지 조건을 그대로 대입하면 다음 후보군도 보입니다. 정형화된 계약서 작성, 단순 기장 대행, 보험 상품 비교 안내, 기본적인 시장 리포트 요약, 상품 상세페이지 문구 작성 같은 일입니다. 공통적으로 양식이 있고, 결과물을 누군가 다시 확인하며, 틀려도 공급자의 책임이 크지 않습니다.
물론 이들 직업이 통째로 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같은 세무사라도 단순 기장만 하는 사무소와 세무조사 대응·절세 설계로 책임을 지는 사무소의 운명은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초안’이 차지하는 비중이 생존을 가릅니다.
내 일의 초안 비중은 몇 퍼센트인가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내 직업이 AI로 대체될까?”라는 질문은 막연한 불안만 남깁니다. 대신 “내 하루 업무 중 초안을 만드는 일이 몇 퍼센트인가?”를 물어보면 구체적인 답이 나옵니다.
그 비중이 높다면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AI를 써서 초안 작업 시간을 줄이고, 남는 시간을 검수·판단·고객 관계처럼 책임이 따르는 일로 옮기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현장, 신뢰, 자격처럼 AI가 복제하기 어려운 자산을 쌓는 것입니다.
체그의 2021년은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함은 ’80점짜리 초안’이라는 모래 위에 서 있었습니다. 지금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같은 구조 위에 서 있는 기업과 직업이라면, 다음 순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The Next Investment
투자 계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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