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금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자 수십만 명이 서부로 몰려들었습니다. 역사에 남은 골드러시입니다. 그런데 이 광풍에서 꾸준히 돈을 번 쪽은 금을 캔 광부가 아니었습니다. 광부들에게 곡괭이와 삽, 질긴 작업복을 판 상인들이었습니다. 그 작업복을 팔던 회사가 170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는 리바이스입니다.
TNI는 앞서 시총 99% 증발…AI로 이미 무너진 업종 5곳에서 숙제 대행, 번역, 스톡 이미지, 콜센터, 신입 개발자 시장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짚었습니다. 그 글에 가장 많이 달린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럼 반대로 AI 덕분에 뜬 직업은 없나요?”
있습니다. 그것도 꽤 의외의 직업들입니다. 이 글에서는 AI가 오히려 몸값을 올려준 직업들을 실제 데이터로 살펴보고, 그 뒤에 숨은 공통 법칙과 투자자·직장인이 써먹을 수 있는 판단 기준을 정리했습니다.

① 공인노무사: AI 감원 ‘뒷처리’가 몰려든다
첫 번째 주인공은 공인노무사입니다. 노무사가 AI와 무슨 관계일까 싶지만, 연결 고리는 생각보다 단단합니다.
해고 추적 사이트 스킬싱커 집계에 따르면 2026년 6월 8일까지 감원된 인원은 약 18만3966명이었고, 이 중 약 55%에 해당하는 감원이 AI·자동화를 직접 사유로 명시했습니다(AI매터스). 한국에서도 유통, 제약, 금융권까지 희망퇴직 소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회사가 AI를 도입해 사람을 줄이기로 결정했다고 해봅시다.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희망퇴직 조건을 놓고 협상이 시작되고, 위로금이 적정한지 따지는 상담이 몰리고, 버티는 직원을 연고 없는 지방이나 외부 영업점으로 발령 내는 ‘퇴사 유도’를 둘러싼 분쟁이 생기고, 끝내 부당해고 구제신청으로 이어집니다.
감원은 버튼 하나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막대한 법적·인간적 ‘뒷처리’를 남깁니다. 그 뒷처리를 맡는 전문가가 노무사입니다.
노란봉투법이 붙인 불
2026년에는 여기에 결정적인 제도 변화가 겹쳤습니다. 2025년 8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 노동조합법, 이른바 노란봉투법입니다.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데일리안).
-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원청이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처럼 근로조건에 큰 영향을 주는 경영상 결정도 쟁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감원 한 번을 하려 해도 검토할 법적 쟁점이 몇 배로 늘어난 셈입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72.9%가 2026년 노사관계가 전년보다 더 불안해질 것이라고 답했는데, 202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불안 요인 1위는 노란봉투법 시행에 따른 갈등(83.6%)이었고, 2026년 임단협 최대 쟁점으로는 정년연장(49.7%)이 꼽혔습니다(헤럴드경제).
한쪽에서는 AI로 사람을 줄이고, 다른 쪽에서는 정년을 늘려달라고 요구합니다. 원청과 하청의 교섭 구도까지 바뀌었습니다. 노동 이슈가 이렇게 여러 갈래로 얽힌 시기는 드뭅니다. 회사는 “어떻게 하면 분쟁 없이 줄일 수 있느냐”고 노무사를 찾고, 직원은 “내가 받는 조건이 정당하냐”고 노무사를 찾습니다. 수요가 양쪽에서 동시에 생긴 것입니다.
시장도 먼저 반응했다
이 흐름은 자격증 시장에서도 확인됩니다. 공인노무사·세무사·감정평가사 등 이른바 ‘문과형 전문자격’ 시험 지원자는 2025년 4만2389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2021년(2만4167명)과 비교하면 75.4% 늘었고, 같은 기간 노무사 지원자는 62.1% 증가했습니다.
노무사 지원자 가운데 30대 비중은 40.5%에 달했습니다(한국경제). 고용 불안을 느낀 직장인들이 ‘정년 없는 자격증’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그럼 AI가 노무사 일은 못 빼앗을까
반만 맞습니다. 근로기준법 조문을 찾고, 판례를 요약하고, 진정서나 답변서 초안을 쓰는 일은 AI가 이미 상당히 잘합니다. 이 부분의 단가는 앞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노동위원회 심문회의장에 들어가 회사 측과 마주 앉는 일, 수십 년 다닌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나가게 된 사람의 사정을 듣고 어디까지 다투고 어디서 합의할지 함께 정하는 일, 그리고 그 결과에 자기 이름을 걸고 책임지는 일은 AI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같은 노무사라도 서면 대행 위주인지, 협상과 사건 대리 위주인지에 따라 미래가 갈릴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② 전기기사: 실리콘밸리 CEO가 “전기를 배우라”는 시대
두 번째 주인공은 전기기사입니다.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돌리려면 거대한 데이터센터가 필요하고, 데이터센터는 결국 전기와 열을 다루는 시설입니다. 데이터센터 건설비의 45~70%가 전기 공사라는 추정이 나올 정도입니다.
인력 컨설팅사 랜드스타드가 2022년 말 이후 5000만건이 넘는 채용공고를 분석한 결과는 이 변화를 숫자로 보여줍니다(포춘).
| 직종 | 최근 약 3년간 채용 수요 증가율 |
|---|---|
| 로봇 기술자 | 107% |
| 냉난방·공조(HVAC) 엔지니어 | 67% |
| 건설 인력 | 30% |
| 용접공 | 25% |
| 전기공 | 18% |
공급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전기노조(IBEW)는 앞으로 10년간 전기공이 약 30만명 새로 필요하고, 은퇴 예정자 20만명의 자리도 채워야 한다고 추산합니다.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 인력의 평균 연봉은 약 8만1800달러로 일반 건설 현장보다 약 32% 높습니다. 미국 텍사스의 한 데이터센터 현장에서는 30세 미만 전기기사가 연 24만~28만달러를 번다는 사례도 소개됐습니다.
엔비디아 젠슨 황 CEO는 AI 붐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프라 구축”이라고 부르며, 전기공 같은 기술직 연봉이 억대로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옐로우). 불과 몇 년 전까지 “아이들에게 코딩을 가르쳐라”가 정답처럼 여겨졌는데, 이제 AI가 코딩을 하고 실리콘밸리 CEO가 전기를 배우라고 말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에서도 신호는 이미 나오고 있습니다. 2025년 국가기술자격 응시자는 229만명을 넘었고, 전기기능사 응시자는 6만7010명으로 전체 종목 5위, 전기기사는 6만4080명으로 기사 등급 3위였습니다(헤럴드경제). 연령별로 보면 전기기사는 50대와 60대 이상 응시자 사이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한국경제). 은퇴를 앞둔 세대가 ‘손에 쥐는 기술’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구조도 미국과 비슷합니다. 수도권과 지방 곳곳에서 데이터센터 건립 계획이 이어지는 반면, 현장의 숙련 전기·설비 인력은 고령화로 줄고 있습니다. 수요는 늘고 공급은 줄어드는 구조, 경제학에서 몸값이 오르는 가장 확실한 조건입니다.
③ ‘도장 찍는 사람’: 책임의 가격이 오른다
세 번째는 특정 직업이라기보다 하나의 직무 묶음입니다. 필자는 이들을 ‘도장 찍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AI가 보고서를 쓰고, 계약서 초안을 만들고, 코드를 짜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틀렸을 때 누가 책임질까요. AI는 법정에 서지도, 손해배상을 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서명하는 사람이 책임을 집니다.
그래서 회계감사, 법률 검토, 보안 점검, 안전 진단처럼 최종 결과에 이름을 거는 일은 오히려 무게가 커지고 있습니다. AI가 만든 결과물이 많아질수록 검증해야 할 대상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고객 상담을 AI 챗봇으로 대거 전환했던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가 품질 문제로 다시 사람 상담원을 뽑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더데일리업사이드).
AI가 만든 수요는 정확히 세 갈래다
세 사례를 나란히 놓으면 AI가 새로 만들어낸 수요가 세 갈래로 정리됩니다.
| 수요 유형 | 무슨 일인가 | 대표 직업 | AI가 늘수록 |
|---|---|---|---|
| 수습형 | AI가 만든 혼란과 갈등을 정리 | 공인노무사, 전직 지원 컨설턴트, 노동 전문 변호사 | 감원·직무 재편이 늘어 수요 증가 |
| 기반형 | AI를 돌리는 물리적 인프라를 구축·유지 | 전기기사, 공조 기술자, 로봇 기술자, 용접공 | 데이터센터가 늘어 수요 증가 |
| 책임형 | AI 결과물을 검증하고 최종 책임을 짐 | 회계감사인, 법률 검토자, 보안·안전 점검 전문가 | 검증 대상이 늘어 수요 증가 |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세 갈래 모두 AI가 ‘할 수 없는 일’이라서가 아니라, AI가 많아질수록 ‘더 필요해지는 일’입니다. 지난 글의 표현을 빌리면, AI가 80점짜리 초안을 공짜로 쏟아낼수록 마지막 20점을 채우는 사람의 몸값이 올라갑니다. 무너진 업종이 ’80점짜리 초안’을 팔던 시장이었다면, 뜬 직업은 그 초안이 넘쳐날수록 바빠지는 시장입니다.
주의: 뜬 직업도 영원하지는 않다
다만 이 흐름을 맹신해서는 안 됩니다. 몸값이 오른 직업에도 세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첫째, 투자 사이클 위험입니다. 전기기사의 몸값은 데이터센터 투자가 이어진다는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AI 기업의 수익성이 기대에 못 미치면 설비 투자가 조정될 수 있고, 그 충격은 현장 인력 수요로 곧장 이어집니다. 최근 오픈AI 매출이 예상보다 200억달러 적다는 분석이 시장을 흔든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둘째, 공급 증가 위험입니다. 노무사 지원자가 4년 새 60% 넘게 늘었다는 것은 수요만큼 공급도 빠르게 늘고 있다는 뜻입니다. 몇 년 뒤에는 자격증 자체보다 어떤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느냐가 더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셋째, 직업 내부의 양극화입니다. 같은 직업 안에서도 AI가 대신할 수 있는 부분은 단가가 떨어집니다. 노무사의 서면 작성, 전기 설계의 반복 도면 작업이 그렇습니다. 직업 이름보다 그 안에서 내가 맡는 일이 ‘초안’인지 ‘책임’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투자자의 렌즈: 금광이 아니라 곡괭이를 보라
이 분석은 포트폴리오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모두가 AI 모델 회사라는 ‘금광’으로 몰려갈 때, 곡괭이와 작업복을 파는 쪽이 어디인지 찾는 것입니다. AI가 커질수록 반드시 돈이 흘러가는 길목입니다.
| 길목 | 왜 돈이 흐르나 | 함께 볼 점 |
|---|---|---|
| 전력 설비 |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과 송배전 설비를 필요로 함 | 수주 잔고와 증설 일정 |
| 냉각·공조 | 고성능 칩의 발열을 처리해야 함 | 액체냉각 등 기술 전환 속도 |
| 데이터센터 건설·임대 | AI 연산 수요를 담을 물리적 공간 | 고객사 집중도와 부채 구조 |
| 검증·보안 서비스 | AI 결과물과 시스템을 점검·인증 | 반복 매출 비중 |
다만 길목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싼 값을 치르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AI 인프라 관련주 상당수는 이미 기대가 주가에 많이 반영돼 있고, 코어위브 사례처럼 고객 집중도나 부채 구조에 따라 주가 변동성이 크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길목을 찾는 것과 적정 가격에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직장인 체크리스트: 내 일은 AI가 늘수록 줄어들까, 늘어날까
“내 직업이 AI로 대체될까”라는 질문은 막연한 불안만 남깁니다. 대신 아래 다섯 가지를 스스로 물어보면 훨씬 구체적인 답이 나옵니다.
- AI가 늘어날수록 내 업무량은 줄어드는가, 늘어나는가?
- 내 결과물에 내 이름과 책임이 걸리는가?
- 현장에 직접 가거나 몸을 써야 하는 일이 포함되는가?
- 사람 사이의 갈등이나 협상을 다루는가?
- 내 일에 필요한 자격이나 면허가 법으로 정해져 있는가?
‘예’가 많을수록 AI 시대에 몸값이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아니오’가 많다면 지금 하는 일 가운데 책임과 판단이 따르는 쪽으로 무게를 옮기거나, 새로운 기술을 익힐 시점일 수 있습니다. 직업 전환을 고민한다면 훈련비를 지원하는 국민내일배움카드를 활용해볼 만합니다.
마치며
골드러시는 몇 년 만에 끝났지만, 곡괭이와 작업복을 판 상인들은 그 뒤로도 살아남았습니다. AI 골드러시도 언젠가는 열기가 식을 것입니다. 그때 살아남는 것은 금을 캐러 몰려간 사람들보다, AI가 늘어날수록 더 필요해지는 자리를 차지한 사람과 기업일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여러분은 금을 캐고 있습니까, 곡괭이를 팔고 있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다음 10년의 몸값을 가를 수 있습니다.
The Next Investment
투자 계산기
※ 계산 결과는 세전·단순 가정 기준의 참고용 추정치이며, 실제 금융상품의 우대금리·수수료·중도상환·비과세 한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세후 금액은 이자소득세 15.4%(소득세 14% + 지방소득세 1.4%)를 일괄 적용한 값으로, 비과세·분리과세 상품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본 도구는 투자 권유가 아니며 최종 판단과 책임은 이용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가 유익하였나요? The Next Investment를 Google 선호 출처로 추가하면 Google 검색에서 더 자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The Next Investment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